관객과의 대화 #3

<시간의방 에피소드#1 몸> 12회차 공연 후

에피소드#1 몸

eunkyoung shin

11/26/20211 min read

시간의방 에피소드#1 몸

2021년 11월 26일 2시 공연 후, 첫번째 관객과의 대화

만든이들: 김민정(배우_몸), 김은진(청각 디자인,배우_에코), 신은경(기획,연출,배우_몸), 이정은(조연출,배우_에코), 하지혜(배우_에코)

관객: 지수, 정은, 가은, 민영, ieunhyang, 주혜, 록시하트

대화 촉진자: 홍정아 (홍빛)

시키는 대로 움직였어요 보려고 왔는데 내가 했어.

관객의 질문_지수. 그런 생각 안 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보러가는 그런 관성에서 내가 막 하고, 갑자기 어느 조건에서 공간을 만들어서 앉아라. 저는 바로 책상과 창문 사이의 1미터도 안 되는 공간에 앉아 있는데, 어, 이거 어떡하지 어떡하지 생각 하면서 동시에 왜 날 시키고 난리야. 뛰라고 할 때에 난감했는 데, 빨리 끝나서 다행이었어요. 시키는 기분이 어떠셨어요?

창작자_몸_민정. 재미있었지요. 제가 지시를 하지만, 그 지시를 받아 수행하는 관객 분들과 사이에서 접점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것.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렇게 지시를 하고 있지만 말로 관객들을 향해 있지만, 관객들이 그 말을 받아들여 행위를 하면서 우리는 연결되어 있구나 해요. 저 역시도 좁은 방 안에서 지시를 내리면서도 떨림이 있었습니다. 무대 밖에서의 긴장감 떨림이 있었어요. 그런 긴장감을 관객에게 느끼게 하고자 했는데, 제가 배우로써 더 많이 느낀 부분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창작자_은경. 아주 정확하게 저희의 예상대로 공연에 들어오신 관객분이세요. 저희가 그런 활동을 하자하고 관객들을 모집한 게 아니라, 기존의 온라인 공연하면 보러오는 공연_ 그 태도로 들어오는 관객분들을 이 참여에 이끌어서 1966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초연한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 같은 디지털 연극 버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냥 눈과 귀만 열어서 공연을 보러 들어온 관객이 이 일련의 활동을 통해서 _ 배우들은 비디오가 켜지지 않고, 그 지시되는 언어를 통하여서 관객으로 들어와서는 배우로써 공연의 행위들을 하고 또한 공연이 일어나는 장소가 배우의 공간이 아닌, 관객 개개인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행위가 일어나는 거잖아요. _ 그 과정을 겪으면서 온라인 공연에서 느껴졌던 재미 없음, 집중하기 힘들었던 것들이 관객의 몸이 깨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관객이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아무것도 새로울 것 없는 냄새와 새로울 게 없는 장소에서 그냥 시각적인 재미만 느껴보려하고 기계가 전달할 수 있는 청감각의 폭도 넓지 않는데, 눈과 귀로만 공연을 감상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관객들의 몸_ 계속 자극받는 몸_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 계속해서 소리는 들리고 있는 너의 그 특별한 환경을 이 공연을 통해서 느껴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더불어 지시를 내리는 마음은, 사실, 관객이 안 따라오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대사를 뱉을 때마다, 너무나도 열심히 활동을 따라오는 관객들이 너무나도 많았어요. 그래서 창작자로써 매회를 거듭할수록 감동이 되고 있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저희 창작자들의 수다가 새벽까지 이어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희가 관객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는 거예요. '그 관객분 이러이러하게 하는 거 봤어?' 이건 관객이 공연을 보고 나서 배우들에게 느꼈었던 수다였을 텐데, 제작자인 우리들이 관객들이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어요. 마찬가지로 저희는 관객분들이 다른 관객들을 훔쳐보면서 혹은 스스로를 비춰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도 너무 궁금합니다.

관객의 질문_주혜. 줌으로 공연을 하게 된 계기

창작자_은경.연극은 관객과 배우가 함께 하는 현장성이 가장 중요한 데, 디지털 연극하면 기존의 공연이 가졌던 특징과 비교했을 때의 차이점으로 1. 신체가 서로 단절되고, 2.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관객과 배우가 함께 하고 있다는 그 시간성이 두드러지게 되는 것 같아요. 공연에 생동감을 줄 수 있으면서 함께 한다는 현장감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요소가 동시성이 되어졌다고 봐요. 그래서 실시간으로 서로를 이어줄 수 있는 화상미팅 디바이스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줌, 미트, 페이스톡, 스카이프와 같은 다양한 디바이스를 사용해 봤는데, 한국분들에게도 사용이 익숙하다는 점과, 화면의 질은 미트나 페이스톡에 비해 떨어지더라도 연결이 안정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줌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관객의 질문_정은. 장-뤽 낭시의 <코르푸스>를 공연에 활용하셨는데,어떻게 텍스트를 녹여내고자 하셨는지, 텍스트의 어떠한 철학적인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셨는지 (36:45)

창작자_은경.온라인으로 사람들을 계속 만나면서, 이러한 온라인 만남을 "비대면"이라고 부르는데, 저희는 이러한 만남을 비대면이라는 단어로 쓰고싶지 않은 거예요. 분명히 우리는 대면하고 있고 평소에 길거리나 공적인 장소에서 만남을 가지는 것보다 더 친숙하게 각자의 집이 연결이 되기도 하면서 (나의 친숙한 공간을 오픈하면서) 더 가까이 마주대하게 되고, 간혹 서로의 숨소리도 듣고, 잠자는 모습까지도 지켜보게 되는데, 이러한 더 친밀한 만남 속에서도 여전하게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바로 접촉에 대한 욕구_서로를 만지고 싶다라는 그리움이었어요. 그러면서 인간에게 접촉의 본능은 정말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절대 만질 수 없는 데, 어떻게하면 서로를 만질 수 있을까라는 불가능한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100% 서로 물리적으로 만날 수 없는 존재들인 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서로를 만질 수가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보면서, 그 중의 한 아이디어가, 우리 방 안에 같은 펜이 있거나, 우리가 같은 칫솔을 쓰고 있을 때, 우리가 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접촉점, 우리가 같은 물건을 잡고 있을 때의 이 접촉점으로 인해서 이 둘의 완전한 만남과 접촉은 아니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접촉이 되지 않나라는 궁금증이 유발이 되었어요. 저희 공연에서 낭시의 코르푸스 텍스트의 여러 문구들이 사용되는 데, 그중에서도 특히 저에게 영감을 준 부분은 "유한한 몸은 무한을 담는다"라는 표현이에요. 우리의 몸은 유한이잖아요. 신체는 새로워질 수 없고, 나이들고, 죽음으로 끝맺게 되는 우리 인간은 특히 육신으로 한계지어진 유한한 존재인데, 이러한 육체를 가지고 무한을 상상하고 무한의 감각을 가진다는 낭시만의 시점이 인상 깊었어요. 그러면서 그가 이야기한 접촉의 글쓰기를 통해 '접촉'이라는 부분이 내 피부의 표면에 닿아져야만 접촉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접촉으로 인해 쏘아올리는 신호들을 통해 내 뇌가 내 정신이 접촉에 대한 욕구를 채우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 텍스트 속에서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접촉을 향해서 나아가는 길은 우리의 신체에 뭔가를 닿게 만들기 이전에 감각할 수 있는 이 정신을 더 깨워야겠다. 관객들의 몸, 그 감각 하나하나를 열어주는 것이 우선이겠다_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관객의 질문_은향. 몸에 대한 리서치는 어떻게 했는지, 우비를 입었던 이유

창작자_정은. 우비는 관객이 의상을 입는 행위였고, 파지(기름종이)처럼 간단하게 나의 환경을 변신시켜줄 수 있는 부분이었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인해 나의 몸의 세밀한 움직임에 따라 소리가 나면서 더 자신의 움직임에 긴장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소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몸에 대한 리서치 과정은 창작자 지혜님이 요가 강사이기도 하기에 호흡이 지나가는 통로나 몸의 소리를 듣는 방법에 대해 피드백을 주었고요. 그 외에도 갑작스러운 격렬한 움직임과 그 이후에 따르는 근육의 팽창에 대한 세밀한 이야기를 보충해 주었습니다.

관객의 질문_민영. 전기장벽이 무엇인지

창작자_은경.전기 장벽에 대한 이야기는 모니터를 말합니다. 전통연극에서 제 4의 벽이 관객과 배우 사이에 있었던 것과 같이 온라인 공연장에서 관객과 배우 사이에 전기장벽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그 외에도 몸의 독백부분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모니터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마주 대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의 시선을 이렇게 마주 대하고 있다라는 착시를 일으키는 디지털 장치의 세팅에 익숙해진 상태임을 끄집어 보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배우의 비디오가 없기 때문에 들려오는 배우의 음성을 통해 관객은 자신의 신체의 상이 배우의 모니터에 맺혀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배우가 관객 개개인을 일대일로 바라보고 있다라는 착각을 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언급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완벽하게 셋팅된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해 서로 마주 대하고 있다는 착시와 착각으로 의사소통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더욱이 몸의 독백은 과장된 연극톤을 사용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현재 연극적 상황임을 인지시키고 이어서 관객과 스프에 대해 주고받는 디알로그가 연극의 속 인물간의 대화로 인식할 수 있길 바랬습니다.

관객의 질문_록시하트. 몸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공연을 기획했는데, 많은 감각 중에서 어떤 감각에 조금 더 촛점을 가지고 기획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몸의 입구를 물어보는 질문이 인상 깊었는데, 인상적이었던 몸의 입구가 무엇인지, 그리고 창작자분들이 생각하는 몸의 입구는 무엇인지.(46:30)

창작자_몸_민정. 25일 관객 분 중에 몸의 입구를 자궁으로 이야기해 주신 분이 있습니다. 자궁에서 우리가 태어나고 있기에 나의 몸의 입구라고 이야기해 주신 관객분이 계셨습니다.

청각디자인_은진. 저희 몸에서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감각이 없는데, 비대면 환경에서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저는 저희가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요. 넷플릭스 봤어라고 하지 넷플릭스 들었어라고 말하지는 않고 있어요. 근데 왜 우리는 듣고 있지만 인지하지 못할까 라는 물음이 있습니다. 듣고 있는데, 인식하지 못하고 흘리고 있을까. 듣는 다는 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소리를 찾고, 무슨 소리가 나는지, 그 소리가 나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지, 열린 귀로 적극적으로 듣는 것으로 그래서 미세한 소리라도 듣자 듣는 것에 소중히 하자라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존 케이지 작가의 4분 33초 작품이 그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작품이지만 무한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거든요. 이 작품에서는 어떤 음악도 듣지 않았다 라고 하실 수 있겠지만, 그치만 그와 반대로 저희가 예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여러분 자신의 숨소리, 움직일 때의 소리들, 옆집의 소리, 벽 넘어의 소리, 우리 집에서 전기가 흐르는 소리. 우리가 듣고 있지만 듣고 있지 않았던, 들었지만 저 소리는 소움이기때문에 자동으로 소음을 걸러낸 나의 귀를 인식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습니다.